[책과 삶]창백한 푸른 점의 미래, 우주의 커튼을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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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코스모스’ 출판 40주년
부인 앤 드루얀이 낸 정통 후속작
과학사에 잊힌 영웅들 찾아가고
우주적 관점서 인간의 본질 탐구

미래의 재앙 경고하며 각성 촉구
“늦지 않았다, 다른 미래가 있다”
과학이 바꿔줄 낙관적 희망 역설도
부부가 함께한 ‘우주의 꿈’ 감동

우주의 나이 138.2억년을 지구의 1년으로 바꾼 ‘우주력’을 넘겨보자. 한 달은 10억년이 좀 넘는다. 하루는 3786만년이다. 1시간은 158만년, 1분은 2만6294년, 1초는 438.2년쯤 된다. 시간이 시작되고 90억년 동안 지구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늦여름인 8월31일이 되고서야 태양을 둘러싼 기체와 먼지 원반에서 행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구의 생명은 9월2일 컴컴한 바다 밑 하나의 기원에서 출발한다. 불완전한 생명체의 DNA는 끊임없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다 뜻밖에 더 성공적인 개체를 낳았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 불리는 과정이었다.

우주력에서 명절을 지정한다면 12월26일은 ‘어버이날’이다. 약 2억년 전 그날 새끼에게 젖을 물리고 양육하는 포유류가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월31일 저녁 7시쯤 인류가 가장 가까운 친척인 보노보, 침팬지와 진화의 길에서 갈라졌다. 같은 날 밤 11시52분, 아프리카에 호모 사피엔스들이 돌아다닌다. 이들은 지구에서 이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벌인다. 그저 먹고살려는 것이 아닌 예술 작품을 처음 창조한 것이다. 마지막 30초, 지금으로부터 약 1만1650년 전 찾아온 간빙기는 인류에게 문명을 선물한다. 지금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지구의 수많은 생명체를 6번째 대멸종으로 몰아넣고 있다.

1980년 출간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우주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코스모스>가 새롭게 돌아왔다. 첫 책 출판과 첫 다큐멘터리 방영 40년을 맞아 최신 과학의 성과를 반영한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이 나왔다. 1996년 칼 세이건이 세상을 떠난 뒤 <코스모스>의 후속작을 자처한 책들이 있었지만, 이번 책은 ‘정통’이라고 불릴 만하다. 세이건과 함께 저술 작업을 벌이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그의 부인 앤 드루얀이 썼기 때문이다. 2020년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역시 13장으로 구성됐다. ‘코스모스’에 대한 탐구로부터 인간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내는 책의 묵직한 메시지도 여전하고, 우주의 경이와 신비 역시 가득하다. 하지만 불안한 기운이 깔려있다. 수십년 전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오만한 인간에 대한 경고다.

“우리는 이 광막한 우주에 출현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존재다.” 칼 세이건의 기획으로 1990년 보이저 1호가 보내온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사진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들었다. 명왕성 부근에서 촬영한 이 태양계 행성들의 가족사진은 코스모스에서 우리의 지구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처지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현재 시속 6만㎞의 속도로 태양계를 벗어난 보이저 1호는 가장 가까운 별인 센타우루스자리 프록시마까지 가는 데만 8만년 걸린다고 한다. 우리 은하에는 그 외에도 수천억개의 별들이 모여 있다. 그런 우리 은하조차 1조개의 은하 중 하나에 불과하다. 왜소 은하까지 헤아린다면 2조개가 될 수도 있다. 코스모스에는 별이 수십해개는 있는 셈이고, 행성은 그것보다 1000배는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거대한 우주조차 우리 이해를 넘어서는 다중 우주의 작은 입자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 창백한 푸른 점에서조차 길을 잃는 인간으로선 대면하기 어려운 압도적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우주의 중심이라는 망상에, 창조주의 유일한 자녀라는 소중한 지위에 집착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어디인지’ 혹은 ‘언제인지’도 모르던 인간은 여러 세대에 걸친 탐구자들의 노력 덕분에 스스로의 좌표를 알아내기 시작했다. 책에선 눈부신 과학의 성과를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과학사의 잊혀진 영웅들을 소개한다. 우주선이 행성이나 위성의 중력으로부터 추진력을 얻어 이동하는 ‘중력 도움(gravitation assist)’을 아폴로 계획이 세워지기 50여년 전 생각해 낸 유리 콘드라튜크, 벌들의 언어체계를 분석해 인간이 아닌 지적 생명체와의 첫 만남을 가능케 한 카를 폰 프리슈 등 다양한 과학자들을 소개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위로 80만명이 굶어 죽은 레닌그라드에서 식물의 씨앗들을 한 톨도 먹지 않고 미래의 생물 다양성 자원으로 지켜 낸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와 그의 동료들 같은 과학의 순교자들도 있다. 이들이 죽음으로 지켜낸 종자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미래’와 같은 의미였다.

책에선 과학을 예술과 역사 그리고 신화와 만나게 하며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의 본질을 보도록 한다. 그리고 ‘각성’을 촉구한다. “기후 변화와 핵 재앙이 인류 문명과 수많은 다른 종들을 돌이킬 수 없게끔 파괴하는 미래로 몽유병자처럼 걸어 들어가는 일을 어떻게 하면 그만둘 수 있을까?”

앤 드루얀은 과학이 미래라는 하나의 가능한 세계를 낙관적으로 바꿔줄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한다. “어떤 발상이든 실험과 관찰로 확인해 볼 것. 시험을 통과한 발상만 받아들일 것. 어디든 증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의심할 것. 권위에 대해서도. 이 규칙들만 지킨다면, 코스모스는 우리 것이다.”

칼 세이건이 인간이 코스모스에서 반드시 유일한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처럼 앤 드루얀도 광대한 우주의 커튼을 들춘다. 이를테면 행성의 고리 같은 것들. 목성보다 20배 더 큰 행성을 상상해보자. 더구나 그 행성에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인 1억5000만㎞의 절반을 넘길 만큼 넓게 펼쳐진 고리가 있다. 지구로부터 420광년 떨어진 곳에 실제로 존재한다. 2012년 외계 행성 중 처음으로 고리가 발견된 J1407b다. 이 행성의 고리가 큰 접시만 하다면, 두께는 사람 머리카락만큼 얇다고 한다. 과학의 진보는 인류가 코스모스로부터 무엇을 새로 알게 될지 잔뜩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현재의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양자 역학’처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차원들과 역설적인 현실들도 여전하다. <코스모스>에선 2차원의 세계 ‘플랫랜드’를 소개했다. 모든 사물이 완벽하게 납작한 세상이다. 사람이 그 세계를 방문하면 평평한 표면에 닿아있는 발바닥 부분으로만 그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플랫랜더들은 우리처럼 우뚝 서 있는 3차원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그 세계에는 ‘위’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코스모스에서 우리는 모두 플랫랜더다.” 그런 우리가 할 일은 “위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책이 다른 감동을 준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꿈이 현재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 것 같다. 현재 과학자들은 인류가 가장 가까운 별로 처음 정찰을 떠나게 될 ‘브레이크스루 스타샷(Breakthrough Starshot)’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약 20년 뒤 1000대의 우주선 함대가 지구를 떠난다. 무게가 1g밖에 안되는 나노 우주선이다. 레이저 빛을 돛에 받아서 움직이는 이 성간 우주선은 나흘 만에 보이저호를 앞지르게 된다. 하지만 그 속도마저도 광속의 20%에 불과하다. 목표는 4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2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다. 태양광 돛을 달고 항해하는 우주선 아이디어는 칼 세이건이 40년 전 묘사한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