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창백한 푸른 점을 구원할 수 있을까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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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1934~1996)은 ‘과학의 대중화’로 유명한 인물이다.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공유했노라며 현대의 고전 <코스모스>를 헌정받은 그의 아내는 ‘대중의 과학화’를 독려한다. 앤 드루얀(71)의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은 오리지널 <코스모스>가 나온 지 40년을 맞아 나온 ‘정식 후속작’이다. 책의 출간과 함께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시리즈 13편도 세계 동시 방영되고 있다.

1980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와 출판물로 함께 첫선을 보였다. 드루얀은 이 시리즈의 공동 작가였다. 2014년에는 두번째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가 나왔고 181개국에 방영된 이 시리즈의 대표 제작자, 감독, 공동 작가로서 드루얀이 참여했다. 문학 전공자인 그는 “과학자가 아니라 이야기의 수렵 채집인”이라고 자평하지만 세이건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갱신되는 과학적 지식과 이야기를 누구보다 충실히 채집해온 “<코스모스>의 영혼”(천체 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으로 인정받는다. 3편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40주년 기념 후속판답게 이 책은 1980년판 <코스모스>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총 13장으로 구성했다. 지구 생명체의 유한한 시공간과 우주의 유장한 시공간을 종횡무진 오가는 초거대 서사로서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도 비슷하다. 칼 세이건이 1980년 책의 초반부터 지구에서 우주로 시야를 뻗어나가는 방식이라면, 앤 드루얀은 우주에서 “창백한 푸른 점”(칼 세이건), 지구를 바라본다. 광대한 우주 속 인류의 겸손과 겸허함을 촉구하는 점 또한

40년 전 그대로다.앤 드루얀은 다른 ‘선대 과학자’들도 계승한다. 기적과 조직화된 미신을 질색했던 스피노자와,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고 했던 아인슈타인을 따른다. 아인슈타인은 코스모스가 시공간의 바다라는 사실을 꿰뚫었고 물질이 시공간에 물결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은이가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나타난 가장 위대한 영적 스승”으로 꼽는 다윈은 우주에 인간뿐 아니라 다양한 방식의 생명과 의식이 있으며, 생명이 정말 연결되어 있다면 거기에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는 점을 깨우쳤다. 1만년 동안 인류를 먹여온 작물들의 씨앗을 비축했던 구 소련, 바빌로프의 식물산업연구소 식물학자들은 2차 대전 당시 굶주림에 무너져 책상에 앉은 채 죽어가면서도 쌀 한톨 먹지 않았다. 인류는 그들 모두에게 빚지고 있다.

40년 전의 <코스모스>와 가장 다른 점은 칼 세이건이 죽은 뒤 수정된 과학적 기술과 지식이다. 예컨대 최근 중국에서 미세 화석으로 발견된 5억4000만년 전의 생명체 ‘사코리투스 코로나리우스’는 겨우 1㎜ 크기이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인간과 다른 동물을 잇는 가장 오래된 공통선조다. 2012년, 지구에서 42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행성 J1407b가 발견되었는데, 이 행성은 목성보다 20배 더 컸고 사방으로 6400만㎞ 넘게 뻗은 거대하고 끝내주는 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2004년 7월1일, 7년에 걸친 행성 간 항해를 마친 카시니-하위헌스 호는 토성계에 다다랐다. 칼 세이건의 예측처럼 위성 타이탄에는 메테인과 에테인으로 구성된 바다가 있었고, 얼어붙은 물도 있었다. 돛에 레이저 빛을 받는 초경량 나노우주선 함대 ‘브레이크스루 스타샷’은 약 20년 뒤 탐사를 떠날 것이다.<코스모스>가 현대의 고전이 된 까닭은 코스모스의 자식들로 살아가는 생명체의 분투, 인류가 쌓아올린 역사, 지식, 종교, 문화, 예술 등이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하나의 서사로 묶였기 때문이다. 이번 책에서 앤 드루얀이 펼쳐 보이는 과학의 세계관 또한 “모든 것은 하나다. 이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이 하는 말이다”라는 기원전 500년께 헤라클레이토스의 발언과 맞물린다. 가끔 지은이는 칼 세이건과 여전히 연결돼 있음을 믿는 눈치다. 사실 과학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 우리를 이루는 원자들은 수천 광년 떨어진 곳의 별들에서 수십억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 아닌가.

코스모스에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차원과 역설도 존재한다. 미발견된 원리의 지배를 받는 양자 세계에서 보면, 모든 사건들은 다른 평행 코스모스들에서 실제로 일어난다고 한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은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것을 ‘초결정론’(superdeterminism)이라 부른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우주에 자유의지가 없다면, 우리는 결정론적으로 움직이는 로봇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정론적 세계에서 프로그래밍된 입자들의 집합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드루얀은 인간과 우주의 자유의지를 믿고자 한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며. “우리는 인류 역사에서 위험하리만치 결정적인 분기점에 와 있다. 하지만 아직 너무 늦지는 않았다.”1981년 일월서각과 문화서적에서 처음 번역 출간된 <코스모스>는 2005년 사이언스북스에서 홍승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번역으로 나온 뒤 지금까지 60만부가 판매됐다. 사이언스북스 노의성 주간은 “2014년 두번째 시리즈 방영 전 미국에서 독자가 줄어든 반면 한국에선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코로나 유행 때문에 취소되었지만 애초엔 방한 계획도 있었을 만큼 한국 독자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한국어판에만 특별히 수록된 서문에서 그는 “한국은 혁신에서 세계를 선도해온 나라이고, 혁신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이 위험한 순간에 필요한 것”이라며 “세계를 지속 가능한 미래로 이끌어 달라, 과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은 발간 첫주에만 1만부가 팔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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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4390.html#csidxc5cfeb86f2f5d80abe31209378a7fc9